블로그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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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쓰는 중인 블로그와 홈서버는 아직 생후 48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예전에 네이버에 블로그를 만들고 포스팅을 시작한 지는 어언 10년이 다 되었네요. 제 만 나이가 아직 스물둘인데, 블로그 만 나이가 열 살이니 거의 인생의 반을 블로깅에 부었습니다. 근데 사실 중간에 쉰 기간도 꽤 있는 편이라 실감이 잘 나진 않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기도 하고 뭐 별거 있나 싶다가도, 10주년이란 단어만 보면 뭔가 그냥 넘어가는 건 블로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오랜만에 옛날 블로그도 뒤적이며 저녁에 추억에 잠깐 빠져봤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
영어 사랑
꽤 예전부터 영어를 예찬해왔습니다. 물론 구조나 완성도 등은 한글이 훨씬 우수하다 생각하지만, 쓰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어쩌다 게임이나 개발과 관련된 영어 커뮤니티를 알게 되고, 눈이 뜨이는 기분을 느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네요. 진행되는 프로젝트 등의 질이나 양 모두 제가 알던 국내 커뮤니티를 압도라는 단어로 모자랄 정도로 압도하는 모습이 가히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를 기점으로 주변에 '모르겠는 게 있거든 영문으로 검색하라.'란 영문검색 만능론을 펼치고 다녔지 싶네요.
세계적으론 쓰는 사람이 많지만, 국내엔 능통하게 다루는 사람이 (적어도 초/중/고 시절의 제 주변에) 많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펜으로 종이에 글을 쓰는 걸 좋아해 시나 소설 등을 종종 작은 노트를 들고 다니며 적곤 했는데, 남이 보면 참 부끄럽더라고요. 초등학생 때 친구에게 영어 필기체를 배우고 필체로 휘갈겨 적어두니 글을 대놓고 적고 있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필기는 거의 항상 영어 필기체로 해왔습니다. 여전히 글자는 종이에 적는 걸 좋아해, 만년필로 빈 공책에 큰 주제 없이 생각나는 걸 종종 씁니다.
삽질
무려 Windows XP다
방대한 자료가 영어로 지천으로 널린 건 알았지만, 당시의 저는 지금보다 영어에 많이 능통하지 못했기에, 그냥 큰 틀만 파악하고 근성으로 밀어붙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냥 하나하나 다 눌러보면서 될 때까지 했습니다. 일례로 예전엔 마인크래프트에 평지맵이 없었고, 위 사진처럼 외부 프로그램으로 강제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형을 모두 없애버리면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한 맵이 되었기에, 얼마나 맵을 살려둬야 접근할 수 있는지 블럭 하나 없애보고 휴대폰에 옮겨서 켜 보는 과정을 접근할 수 없어질 때까지 반복하는 등 정말 다양한 삽질을 해왔습니다.
저 때 체득한 근성이 아직 남아 코딩할 때도 그냥 될 때까지 그것만 물고 늘어지고, 포토샵도 테두리 따는 등의 작업을 할 땐 테두리만 대충 따두고 1픽셀씩 지우곤 합니다. 예전보다 1픽셀씩 지우는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블로그에 다룰 기회가 없는 게 아쉽네요.
코딩
당시엔 안드로이드 커스텀 롬 빌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그 분야에선 따라올 휴대폰이 별로 없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가 쏟아지던 갤럭시 S II 사용자였기에, 정말 다양한 삽질을 많이 해보다가 Recovery Mode나 Fast Boot Mode로도 부팅이 안 돼서 서비스센터도 종종 갔던 기억이 있네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프라다폰 UI가 굉장히 예뻐서 그거 그대로 이식하려고 별 삽질 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커널 빌드 같은 거 하느라 우분투를 깔짝대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가 처음입니다.
관련 자료는 제가 찾은 건 죄다 공개해버리는 순간 제 찬란했던 과거가 모두 드러나는 것들뿐이더라고요. 제 흑역사는 저만 아는 것만으로 충분히 고통스러우니, 참겠습니다.
마인크래프트
이 게임을 10년이나 할 줄은 몰랐는데, 벌써 10년도 넘게 했네요.
솔직히 10년 뒤에도 하지 않을까…싶습니다.
그아탱
잡담 글 쓸 때 이미지 없으면 뻘쭘해 첨부한 이미지나, 안드로이드 관련해 뭔가 글을 쓰면서 캡처했을 때 배경화면 온통 태연으로 도배돼있었네요.
그때부터 아직도 탱빠입니다.
연예인에 별 관심 없던 제게 소녀시대가 대세라며 배경화면 수백 장을 보내주고는 아이유 좋은 날 메가 히트 후 여전히 배경화면이 태연인 제게 요새 누가 소녀시대 좋아하느냐던 박쥐 같은 넘…잘 지내나 궁금하네요.
변한 것
글에서 감정 빼기
호소문이 아니고서야 글에 감정이 섞이면, 대게 읽기 거북한 글이 되어버립니다. 솔직히 아직도 반년 전에 쓴 글만 봐도 글에 감정이 많아 고칠 점이 하나둘 보이는 게 아니고, 여전히 이런저런 감정에 휩싸여 펜을 쥘 때가 많은데, 옛날에 적은 글을 보다 보니 요즘 글은 그냥 로봇에 쓴 수준으로 감정이 없네요.
시작하면 끝내기
예전 글을 보다가 프로젝트 진행한다고 사람까지 모아두고 중간에 엎어버린 금수를 한 명 찾았는데, 참 안타깝게도 그게 바로 저였네요. 요즘엔 그래도 만들기 시작하면 중간에 흥미가 떨어지거나 결과물이 별로일 게 보여도 일단 끝은 내고 봅니다.
상술한 삽질 정신이 올바르게 성장한 좋은 결과지 않나 싶습니다.
섬세함
예전엔 작품을 그냥 공산품 수준으로 찍어내느라 재탕한 것도 아주 많고, 스케일은 크더라도 알맹이가 빈 게 매우 많았습니다. 자잘한 오류는 지금 와서 보면 대충 봐도 다 적으려면 손 아프게 많고요.
요즘엔 디자인은 픽셀 단위로 신경 쓰고, 테스트 케이스는 별 해괴한 것들 구겨 넣어가면서 최대한 문제 없는 완성된 걸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근데 이러고도 몇 달, 몇 년 뒤에 다시 보면 고칠 게 어마 무시하게 많이 보이는 걸 보면, 그냥 그게 섬세하지 못한 거로 보일 만큼 성장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마무리
예전처럼 뭔가 이것저것 배포하던 블로그였으면 뭐라도 뿌릴 텐데, 별달리 그럴 게 없네요.
오늘은 추억에 잠겨 이런저런 감정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가, 내일이 오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포스팅하겠습니다.
최근 이래저래 감정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아 힘들어 포스팅이 좀 뜸했는데, 옛날 일들 돌아보며 자극받은 만큼 좀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